티스토리 뷰

목차



    728x90
    • 목차
      • 훈요 10조 
      • 10조 10항 거란족 결혼 반대 이유
      • 거란족 성립 배경
      • 나가는 말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현명한 왕으로 손꼽히는 고려 태조 왕건! 이는 모든 이민족을 흡수 통일한 그의 융합정책에서 비롯됩니다. 고려 오백년사는 이어 통일 신라 천년사 그리고 이씨 조선 오백년사와 더하여 대한민국 2천년사의 초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 고조선 시대와 선사시대를 가르는 문자의 발명은 각 시대별 역사 기록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알다시피 고려는 구고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고려사가는 확실히 밝혀두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록으로 전해져오는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에는 거란족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훈요 10조에 거란국의 풍습을 따르지 말것을 당부한 왕건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그 이유와 거란족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전체를 압축해서 간략하게 풀어 쓴 것입니다.)

    훈요 10조 

    1. 불교를 존중하라
      불교는 나라를 안정시키는 기본이므로, 항상 숭상하고 후원하라.
    2. 풍수지리설을 존중하라
      산천의 기운(지리적 기운)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니, 길지(吉地)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무시하지 말라.
    3. 고려 건국에 공이 큰 인물들의 후손을 잘 대우하라
      공신들의 후손을 우대하고 그 가문을 존중하여 충성심을 잃지 않게 하라.
    4. 토속 신앙(신령과 귀신)을 무시하지 말라
      백성들이 믿는 신앙도 존중하여 민심을 얻어야 한다.
    5. 백성을 아끼고 세금은 가볍게 하라
      과도한 세금으로 백성을 괴롭히지 말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아야 나라가 오래간다.
    6. 음란과 사치를 경계하라
      왕실과 신하들은 사치와 음탕한 생활을 멀리하여 국가 기강을 바로 세워야 한다.
    7. 변방(특히 여진족, 거란족)과의 외교를 신중히 하라
      변방 민족과 외교나 무역을 할 때는 방심하지 말고, 항상 국경을 튼튼히 지켜야 한다.
    8. 왕위 계승은 정통을 따르라
      왕권을 둘러싼 다툼이 없도록 적법한 순서에 따라 왕위를 계승하라.
    9. 불필요한 궁궐 확장을 삼가라
      궁궐을 과도하게 짓지 말고, 백성의 부담을 덜어라.
    10. 거란족과의 혼인을 금지하라
      거란족은 문화와 풍습이 달라 국혼을 맺으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질 수 있으니 금지하라.

    원문 요지는 이렇습니다. "거란은 형제의 나라라 하나, 그 본심은 믿을 수 없으며, 오랑캐의 풍속은 우리와 다르니 사귀기를 삼가라." 고려 태조가 후대에 남긴 정치적 유훈으로, 거란과의 외교에 있어 표면적인 친선을 믿지 말고 문화적 차이를 인식하며 신중하게 교류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 질문들을 해보겠습니다.

    첫째, 왜 "형제의 나라"라는 표현을 쓰면서 불신을 강조했을까요? 이러한 이중적인 표현은 단순한 외교 레토릭일까요? 아니면 당시 실제 거란과의 외교 상황을 반영한 전략적 메시지일까요? 고려는 왜 공식적으로는 우호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론 경계하는 태도를 택했을까요?

    둘째, ‘풍속이 다르니 사귀기를 삼가라’는 말은 어떤 문화적 편견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이는 단순한 정치적 거리두기일까요? 아니면 고려 중심의 문화적 우월감과 타자화 의식을 담고 있을까요? 그리고 오랑캐로 분류된 북방 민족에 대한 당시 고려의 시선은 단지 외교적 경계였는지, 아니면 문화적 배타성이었는지요?

    세째, 이 조항은 후대의 외교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실제로 고려는 10세기 후반 거란의 1차 침입(993)을 포함해 수차례 충돌했습니다. 이 조항이 그러한 대비나 인식에 실질적으로 작용했을까요? 또는 후대 왕들은 이 유훈을 무시했을까요?

    결론적 통찰

    위 비판적 질문들에 대한 모든 답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훈요 10조에 나타나있는 이 조항은 단순한 경계의 메시지를 넘어서, 국가의 생존 전략, 타자 인식, 문화 정체성 유지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거란이라는 특정 민족을 "믿을 수 없는 타자"로 고정시키는 문화적 고정관념을 강화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조 왕건은 고려 후손이 거란족의 정치적 함수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아마도 그들이 따르는 풍속은 문화적으로 고려가 모두 수용하기에는 리스트가 있기에 드러난 에티켓 이면에 신중함을 당부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란과의 외교적 전략은 공개적으로는 유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형제나라라는 우애로 잘 포장되어 있다고 추측됩니다. 왕건이 거란족 풍습을 따르지 말것을 당부한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0조 10항 거란족 결혼 반대 이유

    왕건이 거란족과의 결혼을 금지하라는 내용을 훈요10조에 명시한 이유는 더 나아가서 정치적, 외교적, 문화적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는 고려의 정체성 수호와 외교 전략의 일관성 유지에 있다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왕건의 거란족 결혼 금지의 핵심 이유는 또한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1. 거란(요나라)에 대한 불신과 경계심 : 거란족은 북방 유목민으로, 당시 요나라를 세워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반도와 중국 북부를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왕건은 거란이 고려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세력이라 판단했고, 이들과의 혼인은 정치적 약점이 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거란은 이후 고려에 침입(거란의 침입, 10~11세기)을 반복합니다.
    2. 고려의 정통성과 고구려 계승 의식 : 왕건은 자신이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고구려의 땅과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정체성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거란은 고구려 유민을 공격하고 북방의 옛 고구려 영토를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거란과의 결혼은 역사적 모순이자 정통성 훼손으로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3. 문화적 이질감과 내정 간섭 우려 : 거란은 유목문화 기반의 이질적인 문화를 갖고 있었고, 혼인을 통해 고려 내부로 그 문화나 정치적 영향이 침투하는 것을 왕건은 우려했습니다. 왕실의 혼인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전략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왕건은 혼인을 통한 거란과의 유착이 고려의 주권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막기 위해 후세 왕들에게 명확한 경계를 유훈으로 남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거란족의 생성 과정은 어떠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거란족 성립 배경

    거란족의 성립 배경은 유목 민족의 성장 과정, 주변 국제 질서의 변화, 그리고 내부 정치 통합 과정을 통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래네가지 내용은 그 핵심 정리 사항입니다.

    1. 유목 민족으로서의 기원 : 거란족은 몽골고원 동남부와 만주 지역에 거주하던 유목민족으로, 다양한 부족 연맹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말, 양, 소를 기르며 이동 생활을 했고, 군사력 중심의 부족 사회였으며, 기동성과 전투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2. 통일과 국가 형성 : 9세기 말~10세기 초, 내부 부족 간의 통합과 외세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커지면서 야율 아보기가 등장합니다. 916년, 야율 아보기가 거란족을 통일하고 요나라를 세우며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구축합니다. 이는 단순 부족 연맹을 넘은 왕조 국가의 출현이었으며, 거란은 유목 전통과 중국식 제도를 혼합한 독자적인 정치를 펼칩니다
    3. 당나라 쇠퇴와 국제 질서 변화 : 당나라 말기 혼란기(황소의 난 등)에 힘입어 북방 민족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습니다. 당의 통제가 약해진 북방에서 거란은 주변 부족을 병합하며 세력을 확장했고, 이 틈을 타 국가로 성장했습니다.
    4. 중국식 제도 도입과 이중 체제 운영 : 요나라는 유목민 통치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한족을 통치하기 위해 이중 행정 체제(북면 관제, 남면 관제)를 운영하며 효율적인 지배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거란족은 당나라의 쇠퇴, 유목 민족의 전통적 군사력, 그리고 야율 아보기의 정치적 통합력이라는 세 요소가 맞물리면서 국가로 성립했고, 이후 중국 북부와 고려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대국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거란족과의 관계를 신중히 유훈으로 남긴 왕건의 유언을 위에 언급한 내용을 요약하여 나가는 말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나가는 말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는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고려 왕조의 이상과 방향성을 후대에 제시한 핵심 통치 철학이자 정치 전략입니다. 이 문서에는 불교 중시, 풍수지리 신봉, 고구려 계승 의식, 신라 존중, 호족 포용 등 당시 사회와 정세를 아우르는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거란족과의 혼인을 금지한 조항은 왕건의 외교적 경계심과 고려의 정체성 수호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거란은 강력한 유목 국가로 성장했으며, 이후 고려에 위협이 되는 존재였기에 왕건은 혼인을 통한 정치적 약점 노출을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거란족의 성립은 유목민 전통, 당나라 쇠퇴, 야율 아보기의 통합력 등 복합적 요소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요나라는 유목과 농경, 북방과 중국식 제도를 융합해 강대국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고려 외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훈요 10조는 고려라는 나라가 단순히 권력의 계승을 넘어, 어떤 가치와 이념을 기반으로 지속되어야 하는지를 제시한 중요한 국가 유산입니다. 왕건은 이를 통해 후대 왕들이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민심과 전통을 지키며 현명한 정치를 펼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도 지도자에게 필요한 혜안과 원칙을 보여주는 귀중한 교훈으로 남아 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