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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최초의 여황제 측천무후 그리고 유일한 아들에드워드 6세를 출산한 영국 헨리왕의 최애 세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 두 여성의 삶을 조명해본다.
📚 당신이 선택한다면?
세상을 뒤흔들 권력을 쥐는 여성 vs 누군가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여성.
여러분은 어떤 삶에 더 끌리시나요?역사에는 시대를 뒤흔든 여인들이 존재합니다.
오늘은 서로 다른 문화와 시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두 여성의 이야기를 나눠보려 해요.
한 명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성 황제,
다른 한 명은 영국 역사상 가장 사랑받은 왕비.
그녀들의 이름은 **측천무후(則天武后)**와 **제인 시모어(Jane Seymour)**입니다.
🌸 1. 황제의 자리에 오른 여인 – 측천무후
- 생몰년: 624년 ~ 705년
- 국적: 당나라 (중국)
- 신분: 궁녀 → 황후 → 황제
- 재위: 690년 ~ 705년 (주나라 창건)
▣ 그녀의 여정
측천무후는 당 태종 이세민의 궁녀로 입궁해 황후도 아닌 차비(차상궁) 신분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황제 사후, 고종의 총애를 받아 다시 궁으로 돌아와 황후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녀는 고종의 병약함을 틈타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했고, 결국 당나라를 멸하고 ‘주(周)’라는 새 나라를 세워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황제로 등극합니다. 그러나 주나라는 다시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당나라로 귀향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정치, 종교, 예술, 문학을 통한 국가 통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으며, 관용과 숙청을 교차시킨 냉철한 리더십으로 평가받습니다.
▣ 평가와 논란
- 긍정: 과거시험 확대, 여성 권리 일부 향상, 정치적 안정
- 부정: 수많은 숙청과 탄압, 권력욕의 화신
측천무후는 여성의 이름으로 전무후무한 '황제'의 칭호를 사용한 인물이며,
그녀의 통치는 지금도 ‘여성 권력의 극한’으로 회자됩니다.
중국 최초의 전무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
🌼 2. 짧지만 영원한 사랑 – 제인 시모어
- 생몰년: 약 1508년 ~ 1537년
- 국적: 잉글랜드
- 신분: 귀족 → 궁녀 → 왕비
- 재위: 1536년 ~ 1537년 (1년)
▣ 그녀의 여정
제인 시모어는 튜더 왕조 헨리 8세의 세 번째 아내입니다.
1대 왕비 캐서린과 2대 왕비 앤 불린의 불행한 결혼 후, 제인은 헨리의 진정한 사랑으로 불렸지만 단 1년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헨리에게 유일한 아들 ‘에드워드 6세’를 낳은 왕비로, 생명을 대가로 아들을 남긴 여성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녀는 궁중에서 조용하고 신중한 이미지로, 전 왕비들과 달리 권력보다는 가족과 평온을 선택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 헨리 8세의 사랑
헨리는 제인을 생전에 가장 사랑했고, 그녀가 죽은 후에도 재혼을 계속했지만
죽은 뒤 본인이 그녀 곁에 묻히길 원했을 만큼 유일한 왕비로 여겼습니다.
🔍 대비되는 삶, 그러나 공통된 운명
| 항목. 시대/지역 |
측천무후. 7세기 중국 당나라 |
제인시모어. 16세기 영국 튜더 왕조 |
| 출신 | 상인의 딸, 중산층 | 귀족 집안 출신 |
| 권력 획득 방식 | 정치적 전략, 권력 장악 | 왕의 총애, 후계자 출산 |
| 권력의 성격 | 적극적 개입 → 스스로 황제 등극 | 간접적 영향력, 헨리의 사랑 |
| 역사적 평가 | 권력형 정치가, 여성 혁신가 | 순수한 모성, 이상적인 왕비 |
| 최후 | 노년에 스스로 퇴위 후 사망 | 산욕열로 출산 후 사망 |
💭 마무리하며 – 두 여성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
- 측천무후는 강철 같은 리더십으로 왕조를 뒤흔든, 냉철하고도 치열한 삶을 살았고
- 제인 시모어는 헨리 8세의 혼란스러운 결혼사 속에서 유일하게 사랑받은 왕비로 남았습니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성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나는 권력을 쥐기 위해 세상을 뒤흔들었고,
다른 하나는 생명을 걸고 아이를 남김으로써 왕조를 지켰죠.
이 둘의 삶은 오늘날 여성의 역할, 선택, 사랑과 권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듭니다.